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악의 문제 (문단 편집) ==== 기회 문제 ==== >높은 자리에 있으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모두 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러나 나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높은 사람에게는 천부의 저주다. 왜냐하면 나쁜 일이라면, 제일 좋은 조건이 그러한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이요, 그 다음이 그럴 수 있는 여건에 놓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 수필집(김길중 역, 문예출판사)" 중 '높은 지위' >(전략)그때 현문스님이 다니던 성당의 주교님은 [[폴란드]]에서도 가장 존경 받는 카를 보티라[* Karol Wojtyła, 실제 발음은 '카롤 보이티와'에 가까우며 '카를 보티라'라는 이름은 [[폴란드어]] 인명에 무지한 역자의 오타로 보인다.] [[추기경]]이었다. 이분이 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되신 바로 그분이다. 현문스님은 카를 보티라 추기경이 교황이 되기 1, 2년 전에 [[견진성사]] 의식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니 그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얼마나 영광된 일이었겠는가. >수련 마지막 날, 추기경님은 학생들에게 그 동안 가르침에 대해 질문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현문스님이 번쩍 손을 들었다. 그는 당시 어린 나이였는데도 일찍 삶과 죽음의 근원적 의문에 휩싸였다. 세상의 많은 불공평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견진성사를 받기 전에 반드시 이 의문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문스님이 입을 열었다. >“신부님, 하느님께서 우리를 똑같이 사랑하신다면 왜 [[장애인]]들을 만드셨을까요?” >신부님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건 우리가 장애인들에게 동정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우리가 나쁜 일을 하면 그렇게 태어날 수 있다[* 기독교는 윤회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 부분 역시 역자의 오역으로 추정된다. 원래 의도는 후술할 3.5 문단에서 처럼 '악은 인류의 죄에 대한 경고이며 그 경고 중 하나가 장애란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을 경고하시기 위함이지.” >현문스님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만약 그러한 신이라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순간 성사를 받을 수 없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신부님 말씀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성당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난 뒤 성당에는 아예 발길을 끊었다. >---- >[[현각]], 《[[만행]](萬行):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해당 저서에서는 현각 역시 자신이 다니던 성당의 수녀에게서 비슷한 의구심을 품은 일화 또한 언급된다. 허나 아예 기독교에 등을 돌린 현문과는 달리 저서에서도 지속적으로 성경의 문구를 인용하고 천주교 관련 인사들에게 일괄적으로 '분', '하시다' 등으로 존중의 의미를 담는 등, 악의 문제에 대해서만 의구심이 있을 뿐 [[반기독교]] 성향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아래에서 인용한 바트 어만과 비슷한 예라 볼 수 있다.] (열림원) 중 '나의 도반 스님들' 어째서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하사 그들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길 바라는 전지전능한 신은 악을 행할 가능성이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는가? 본래 야훼를 비롯한 아브라함 계열 종교의 입장으로는 창조주는 인간을 만들 때 자신을 닮도록 했고, 인간을 자신의 아들 딸이라고 부른다. 현 세태를 생각하자면 옆집에 도박장이 있는 집에 이사간 거나 다름없다. 다른 관점에서는, 많은 현명한 부모들이 자기 자식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며 자기 자식의 꿈이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인정해 주는 것처럼 신 또한 피조물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구약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이 유대인을 어떻게 억압했건 간에 그건 이집트인들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신이 직접 나서서 이집트인들을 학살하면서까지 유대인들을 가나안으로 이끌면 안 되는 것이다. 신이 유대 민족을 이끌면 유대인들과 이집트인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에 관하여 [[기독교]]에서는 천국은 창조주와 함께 하는 자리고 지옥은 창조주가 결여된 장소라 표현하는데, 교리에 따르면 사후 그 자가 어떤 삶을 (그것이 악하든, 선하든) 살아왔든 간에 그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기에 이대로 자신과 함께하길 원하지만 함께하길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존중한다고 말한다. 신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자가 당도하게 되는 자리가 바로 지옥, 즉 신이 결여된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구약과는 달리 신약 이후의 기독교에 가장 중요한 방향성이라면 이와 같이 무조건적인 자비와 선이고, 이는 종파에 따라 다르지 않다. 한 때 동성혼에 대해서 찬반논란이 과열되고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동성애자들은 천벌 받을 죄인이라고 매도할 때 당대 교황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록 동성애자가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내 앞에서 진실로 하느님을 구한다면 내 어찌 이들을 품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고 한 것이 이와 일맥상통한다. 예수가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지을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임당한 이래, 무조건적인 자비와 사랑은 현 기독교의 핵심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다만, 이는 '''교리가 그렇다는 것이며 여전히 믿음의 문제로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바라는 합리적인 답변은 되지 못하는, 다시 말해 내수적으로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단순히 개인이 신을 거부하여 지옥에 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무고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상황을 신이 바로잡아 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의 의사를 존중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삶을 택하는 것을 인정해준다 하더라도, 그가 타인과 사회에 해를 입히는 행위를 하는 것까지 내버려두고 [[방관]]한다면 대체 그를 어떻게 좋은 부모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